성경공부_크리스천 베이직_02장_너희가 원숭이를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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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_크리스천 베이직_02장_너희가 원숭이를 믿느냐?

최고관리자 0 110 2024.03.14 23:31

CHAPTER 2 『너희가 원숭이를 믿느냐?』 

- 창조냐? 진화냐? -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포로 시작된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은 우연히 생겨나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한 계획과 뜻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믿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창조론을 거부하고 진화론을 고집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단순한 학설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학설이 아니다. 진화론은 학설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진화론 속에는 교묘한 사탄의 전략과 의도가 담겨 있다.



진화론과 우연, 창조론과 필연


사탄은 진화론을 전도하기 위하여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창조론을 무너뜨리면 기독교 신앙은 그 기초부터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 속에는 기독교 신앙을 기초부터 무너뜨리려고 하는 명백한 사탄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크리스천 중에도 진화론을 그저 학설로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인생의 기초를 창조론 위에 놓느냐, 진화론 위에 놓느냐에 따라 그의 삶과 인생이 구별되며, 행복과 불행, 그리고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는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진화론자는 반드시 그의 주장을 ‘우연’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진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진화 이전에 진화의 모체가 되는 생명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진화의 모체가 되는 생명(그것이 아메바든 아니면 다른 원시 생명체이든지 간에)이 어떻게 생겨났느냐에 대하여 진화론자들은 “우연히 생겨났다.”라고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기초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론의 기초는 필연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고 다스리시는 세계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는 없다. 우연은 무능과 무관심에서만 나오게 되는데,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에게 우연한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존재가 된다. 그러나 창조론에 따르면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어서 창조된 필연적인 존재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필연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의도가 있다. 우리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그리고 우리가 좋게 느끼든 좋지 않게 느끼든 상관없이 그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언제나 옳으며 선하다. 이 믿음은 이 땅에 사는 우리 인간은 결코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불가지론자들이 믿는 또 하나의 종교다.》


※불가지론: 하나님의 존재는 알 수도 없고 입증할 수도 없다는 견해 또는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관점.



의미 있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우연이란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연한 일에 의미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 대해 또 그 일의 뜻과 의미를 물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는 무의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이 다 무의미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 없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주변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필연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매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창조론을 믿고 사는 한 우리는 절대로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창조론을 믿고 사는 한 우리에게 무의미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의미 있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미는 무가치로 이어진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미가 없는 것에 가치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을 다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여기에 진화론의 치명적인 독(毒)이 있다. 진화론을 믿으면, 자신의 존재와 세상의 모든 것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우연한 존재와 일이 되고 만다. 그 모든 것이 우연한 존재와 일이 됨으로써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한 존재와 일들이 되고,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한 존재와 일이 됨으로써 그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무가치한 존재와 일들이 될 수밖에 없다. 진화론 속에는 우리의 존재와 세상의 모든 것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사탄의 무서운 흉계가 숨어 있다.



인간의 상품화 ⇦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 유물론 ⇦ 진화론 ⇦ 무신론(창조주를 거부)


※유물론: 유물론(唯物論, 영어:materialism) 또는 물질주의(物質主義)는 만물의 근원을 물질로 보고, 모든 정신 현상도 물질의 작용이나 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론


그러나 창조론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나와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으면, 나와 세상이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인 존재임을 믿게 된다. 나와 세상이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은 나와 세상 속에, 그리고 나의 존재와 세상의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의도가 있으며, 그것은 나와 세상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뜻한다.



소유냐 존재냐


나는 가난한 집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런 배경 때문에 나는 심한 열등감과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가 됐다. 내성적인 성격은 그런대로 장점도 되지만, 심한 열등의식은 잘못하면 사람을 아주 모나고 비뚤어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는 그 열등의식에서 해방되어 나름대로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계획 속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기 전 나는 가난을 부끄러워했다.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까지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나의 가난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를 좋게 평가해주는 사람들은 나에게 가난의 티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가난했으나 가난의 티가 없이 자랐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나는 그 평가를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믿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히 생겨난 어떤 생명체에서 진화한 존재로서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없이 그냥 살기 위하여 존재하는 생명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물을 수 없고 존재의 가치를 논할 수 없다. 그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구름처럼 정처 없이 흘러가는 생(生)의 방랑자일 뿐이다.


그 생의 방랑은 방황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방황은 결국 방탕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진화론을 믿고 사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삶은 '존재 가치'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소유 가치'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고, 그는 그저 잘 입고 먹으며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으며 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이 땅에 태어난 필연적인 존재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자신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무엇인가 중요한 삶의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로 인식한다. 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에 관한 관심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가치는 '소유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가치'에 있다. 그리고 소유보다 존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된다.


인생을 좀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사는 사람과 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은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이 세상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소유 가치에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악하게 만든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특별한 존재다


삶의 참 행복은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존재가 가치 있는 삶으로 존재하는 데 있다. 진화론은 우리의 존재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해답을 줄 수 없다. 따라서 진화론적인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소유 가치로 그것을 대신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저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좀 더 인간답게 존재하는 데 두고 살지 못하고 좀 더 가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들을 소유하는 데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이 존재에 욕심을 갖지 않고 소유에 욕심을 갖게 되면 자연히 타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소유에 대한 욕심이 온갖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결국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 모든 것의 뿌리가 진화론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진화론의 치명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창조론을 믿는다. 나는 내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뜻과 기대를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의미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나는 절대로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라고 하는 분명한 자긍심과 자존심이 있다. 그것은 교만과 다르다.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할 때보다 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될 때 사람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좀 더 가치 있는 존재에 대한 선한 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소유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자연히 죄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 수 있다.


나를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물으며 그 뜻과 기대를 깨달아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그 삶은 방황하는 삶이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는 경주하는 삶이다. 나는 경주하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와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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